선덕여왕 릉

 

선덕여왕은 신라의 제27대 왕으로 한반도 역사상 첫 여성 군주이다. 632년 진평왕이 아들을 남지기 못하고 숨을 거두자 화백회의가 선덕여왕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 "성조황고(聖祖皇姑)" 라는 호를 올렸다. 【재위 : 632년~647년 성은 김(金), 이름은 덕만(德曼), 호는 성조황고(聖祖皇姑), 이다.】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맏딸로 태어 났다. 반명 진평왕은 덕만공주·천명공주·선화공주 세 딸이 있었다.

 

 

▲ 경주시 배반동 산79-2 에 위치한 선덕여왕 무덤

 

 

▲ 주차장에서 조금 오르면 산 위쪽으로 올라가는 선덕여왕릉 의 표지판이 있습니다.

 

 

▲ 경주시 보문동 낭산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108m 뒷동산과 같은 낮은산.

 

 

 

 

▲ 잘못 왔나 싶을 정도로 좁은 산길로 올라 갑니다.

 

 

 

 

▲ 찾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어 조금은 의아해 했습니다... ^^

 

 

▲ 저 앞에 선덕여왕 릉이 보이는 군요.

 

 

신라의 선덕여왕은 재위 내내 강성한 고구려와 백제의 공세에 시달렸지만 첨성대와 함께 황룡사 9층탑, 영묘사 등을 건립하여 불교를 진흥시켰으며 김춘추, 김유신 같은 뛰어난 인재들을 양성하여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 원형봉토분으로 밑 부분에는 자연석을 2~3단으로 쌓은 둘레돌을 배치 높이 6.8m, 지름23.6m, 사적 제182호.

 

 

▲ 왕릉을 찾는 동안 울창한 자연 소나무숲이 마음을 흡족하게 했습니다.

 

 

 

 

 

 

 

 

▲ 예지력이 뛰어난 선덕여왕 ★당나라 태종이 진홍, 자색, 흰색의 3색으로 그린 모란과 그 씨를 석되 보내 왔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다.” 하고 곧 그 씨들을 뜰에 심게 했습니다. 꽃이 피어서 질 때까지 과연 그 말과 같이 향기가 없었습니다. ★경주 영묘사 옥문지(玉門池)라는 연못에 겨울철인데 많은 개구리들이 모여 3, 4일 동안 울고 있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백제 군사 500명이 거기에 숨어 있었으므로 모두 잡아 사살했고, 또 백제 장군 오소가 남산 고개 위에 숨어 있으므로 에워싸서 이를 또한 사살하게 되었습니다. 또, 후속부대 1,300명이 오는 것도 격파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왕이 건강할 때 말씀하기를, “내가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利天)에 장사(葬事)하여라.” 하였습니다. 신하들은 그 곳을 알지 못하여, “그 곳이 어느 곳입니까?” 하고 물으니, “낭산(狼山) 남쪽이다.” 하였습니다. 그 후 과연 그 날이 되어 죽으니 낭산 남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해 집니다. (위글은 인터넷 참조)  예지력이 뛰어나 선덕여왕이 비록 이곳에 묻이기를 원했지만 찾아온 길이 요즘 유적지에 비하면 조금은 의아해 했습니다. 입구에 표지판만 있다는게...둘러보고 내려오는데 어느분도 여기가 선덕왕릉 가는길이 맞는냐고 여쭤 보더군요....ㅎㅎㅎ 

★사진여행 : 20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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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배반동 산 79-2 | 경주선덕여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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