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안면도 할미,할아비 바위

 

우리는 매년 한번씩 만난다.

중마고우 2박3일의 만남.

한 고향에서 태어난 중마고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올해에는 2박3일 동안 서해안을 다녀올 생각에 먼저 태안 안면도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딱히 정해진 날짜는 아니지만 서로 연락하여 시간을 낼수 있는 날짜를 택해서 만나기로 하였다.

시간이 되면 언제든 만날수 있지만 서로 바쁜 일과 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쉬운일은 아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일년에 한번 정해 놓고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시작은 어렵지만 벌써 7년째인듯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면 즐겁고. 편하고. 가보지 못 했던곳도 다니면서 맛있는것도 먹어 보자고 하였습니다.

 

▲ 안면도 상징 할미.할아비바위 유래

글씨가 작은 관계로 직접 적어 봅니다.

 

통일 신라의 제42대 흥덕왕(826~836)때,해상왕 장보고(張保皐)가 청해(완도)에 진(鎭)을 설치하고

대사가 되어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서해안으 중심지인 안면도(견승포)에 전략적 전진기지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기지의

책임자로 승언(承彦)장군이 파견되었는데, 승언장군은 부하들을 친형제처럼 아끼고 사랑으로 다스리니 모두 사기가 하늘을 닿았다.

또한 승언장군에게는 아름다운 미도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부부간의 금슬이 아주 좋았으며 부부의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승언장군에게 궁복(장보고)으로 부터 급히 군선(軍船)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군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전장으로 떠나는 승언장군은 사랑하는 아내와 기약없는 작별인사를 나눈 뒤 군선(軍船)을 이끌고 북쪽으로 항진하였다.

그 후 여러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초조해진 미도부인은 바닷가 높은 바위에 올라가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일편단심으로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으나 장군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미도부인은 포기하지 않고

밤낮으로 수 십년을 기다리다 마침내 이 바위에서 죽고 말았다. 그 뒤 이 바위를 할미바위라 부르게 되었으며, 그 후

어느날 밤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천둥소리가 하늘을 깨는 듯 하더니 할미바위 앞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았는데 이를

할아비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 우리가 도착 했을때는 밀물 이어서 할미.할아비바위가 물속에 잠겨 있더군요.

 

▲ 할미.할아비 바위를 배경으로

우리는 처음 이렇게 만남의 추억을 남겨 봅니다.

 

 

▲ 바로 옆 아주머니께서 해삼,멍게,낙지를 팔고 계서서

싱싱한 해산물로 목을 축였습니다...^^

 

 

▲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

 

 

▲ 한참을 있어도 완전히 수면 위로 들어나지 않는 할미 . 할아비 바위

 

 

▲ 이 다리를 건너면 활어 판매장 과 식당들이 많더군요.

 

 

 

 

 

 

▲ 안면도 하면 게국지가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게국지를 먹으러 식당을 찾았지요. 

처음 먹어본 게국지 이지만 그렇게 특이한 맛은 나질 않았습니다.

 

 

▲ 밥을 먹고 나오니 멀리 보이는 할미. 할아비바위 쪽으로 사람들이 들어 가는군요.

 

 

▲ 물속에 잠겨 있던 할미.할아비바위가 완전히 모습을 들어 냈습니다.

 

 

▲ 그리고 할미 바위 옆으로 다가가 그 모습을 담아 봤습니다.

 

 

▲ 다정한 친구의 모습들~~~

이렇게 만남의 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사진여행: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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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산 27 | 안면도꽃지 할미할아비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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